‘국채보상운동’ 이달의 독립운동 12건 선정 이유는?
광복 80주년과 사건 중심 독립운동 선정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운동 기념 활동을 보다 의미 있게 진행하기 위해 기존의 인물 중심에서 사건 중심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는 독립운동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우리 역사를 새롭게 되짚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2025년부터는 12개 독립운동 사건을 매달 하나씩 선정하여 이달의 독립운동으로 기념할 계획입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으며, 121건의 다양한 독립운동이 추천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층 깊이 있는 이해와 관심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달의 독립운동 선정 과정
‘이달의 독립운동’ 선정은 정교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먼저,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한 달간 보훈부와 관련 기관 웹사이트를 통해 국민의 추천을 통해 독립운동 사건을 모집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총 121건의 후보가 올라왔고, 약 3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매달 하나씩 총 12건의 독립운동 사건이 선정됐습니다. 이로써 국가의 역사를 풍부하게 재조명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 각 사건을 통한 독립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연결했습니다.
-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한 선정 과정이었습니다.
- 정기적으로 진행될 ‘이달의 독립운동’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려 합니다.
1월: 국채보상운동의 의미
이번 기념 행사에서 첫 번째 독립운동으로 선정된 것은 1월의 국채보상운동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에 시작되어 우리 민족의 단결과 경제적 자립을 향한 열망을 나타냅니다. 일본의 강압 아래에서 1300만 원의 빚은 국민 모두의 힘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시작되었으며, 경제적 협력을 통해 독립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운동은 결국 일본의 탄압으로 중지되었지만, 국민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2월: 신간회 창립의 배경
2월에는 신간회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하나의 목표인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연합하여 1927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신간회는 4만여 명의 회원으로 당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단체였습니다. 이 조직은 이후 민족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모든 계층의 참여와 연대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3월: 3·1운동과 그 의의
3월에 선정된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한 민족의 만세운동으로, 1919년에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은 민족의 자각을 일깨우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원동력이 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운동은 전 민족이 함께하는 대규모의 시위로,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내었습니다. 따라서 3·1운동은 단순한 저항을 넘어서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4월의 선정된 사건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입니다. 이 정부는 1919년 4월 11일에 국권 회복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임시정부는 3·1운동이라는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독립을 위한 주요한 기점이었습니다. 1945년 광복을 이루기까지,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민주공화국을 창출하고자 한 민족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한국 역사에서 임시정부의 역할은 그 자체로도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5월: 여성운동의 시작, 근우회 창립
여러 담론을 통해 에 대하여 근우회가 5월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의 지위 향상 및 민족 해방을 위한 운동의 상징으로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설립되어 여성의 단결에 힘을 주었습니다. 이 단체는 여성의 공고한 단결을 통해 성장을 도왔고, 여성의 정치적 참여와 권리 증진을 위한 선전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이 독립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6월: 6·10만세 운동과 민족독립 의식
6월에는 1926년에 발생한 6·10만세 운동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제2의 3·1운동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으며, 학생들이 주도한 민족 독립운동입니다. 이후, 이들은 민족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신간회와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6·10만세 운동은 침체된 민족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7월: 광복회의 활동과 영향
7월에는 광복회의 조직이 선정되었습니다. 광복회는 1915년에 결성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습니다. 이들은 독립군 양성 및 군자금 모금에 활발히 나섰습니다. 또한 친일 세력을 처단하고 일본의 군자금을 탈취하는 등 활발한 다양한 독립운동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광복회의 노력은 항일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8월: 일장기 말소사건의 역사적 의의
8월에는 일장기 말소사건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가슴에 붙어 있던 일장기 마크를 삭제한 일로,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입니다. 이 사건은 국민의 의식 전환을 가져왔고, 항일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의 자부심이 더욱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9월: 한국광복군 창설의 의의
9월에는 한국광복군의 창설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군대는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로 창립되었고, 일본에 대한 전면적인 전쟁을 준비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대일 선전포고를 하며 자주독립의 의지를 세 세계에 알렸습니다. 한국광복군의 창설은 항일운동에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10월: 한글날 제정과 언어의 소중함
10월에는 한글날 제정이 선정되었습니다. 일본의 감시와 탄압속에서도 학자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한글을 지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기 위해 1926년 11월 4일에 '가갸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고 광복 후에는 10월 9일로 날짜가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제정된 날은 우리 민족의 언어의 소중함을 상징합니다.
11월: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전개
11월에는 광주학생 독립운동이 선정되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된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입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이 운동은 이후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3·1운동에 이어 일제강점기 마지막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평가받습니다. 민족의 통합된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2월: 13도창의군 결성과 의병의 힘
12월에는 13도창의군의 결성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군대는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결성되어 전국의 의병 세력을 결집시켰습니다. 고난의 상황에서도 의병들은 국권 회복을 위해 다양한 전투를 치렀습니다. 비록 서울 진공작전은 실패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이후 항일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3도창의군의 결성은 의병의 힘을 새롭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내년 길고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온 국민이 광복이라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 지 8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며, “자주독립을 쟁취한 애국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에 대한 기록을 더욱 가시화할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독립운동의 역사와 그 의미를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