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피어나는 여름꽃, 영동 배롱나무 산책

100일간 피어나는 여름꽃, 영동 배롱나무 산책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가지마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배롱나무꽃은 낙엽 활엽수로서, 그 꽃이 100일 동안 피어있다고 하여 '백일홍'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순차적으로 피어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충북 영동은 긴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배롱나무꽃이 유적지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는 명소로 손꼽힙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두 곳, 세천재와 반야사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세천재, 1691년 건립된 충주 박씨 가문의 재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오곡길 94-97에 위치한 세천재는 2022년 보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재실입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곳은 충주 박씨 강릉 공파 박세필이 1691년에 처음 지은 공간으로, 제향과 후손들의 학문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또한 초대 대통령 이시영 선생이 시국 강연회를 개최한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매곡면 주택가 인근 낮은 산자락에 자리한 세천재는 충청도 재실 건축의 전통을 잘 보여줍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는 세 그루의 배롱나무가 자리해, 돌담과 건물과 어우러져 한여름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좁은 공간 탓에 나무들이 건물을 일부 가리기도 하지만, 만개한 꽃들은 세천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세천재 대청에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가전충효 세수돈목(家傳忠孝 世守敦穆)이라는 편액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집안의 화목이 모든 일의 근본임을 강조하며, 나라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도, 그리고 서로 배려하고 화목할 것을 가르치는 가문의 오랜 가훈입니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배롱나무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으며, 세천재를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인근 솔밭 산책로인 내오곡 체력 단련장입니다.
반야사, 500년 넘은 배롱나무와 고즈넉한 사찰
세천재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에 위치한 반야사는 500년이 넘은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보존 수목으로 지정된 사찰입니다. 백화산 자락에 자리한 이 사찰은 신라 성덕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상원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1464년 세조 10년에 중창되었습니다.
반야사의 일주문을 지나면 협소한 진입로가 이어지며, 주말에는 대형 관광버스와 마주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극락전 앞 좌우에 자리한 배롱나무는 각각 둘레 0.8미터와 0.6미터, 높이 8미터와 7미터로, 특히 좌측 나무는 지상 1미터 높이에서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자라고 있습니다. 꽃이 지는 시기에도 화려한 색을 유지하는 배롱나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찰 북쪽 석천계곡에서 1950년에 이전된 높이 3.4미터의 삼층 석탑은 고려 시대 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신라와 백제 석탑의 특징을 함께 지닌 보물입니다. 고즈넉한 사찰과 진분홍 꽃잎이 어우러진 반야사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으며, 세조가 피부병을 치유한 전설도 전해집니다.
또한 반야사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랑이 형상의 바위가 산기슭에 자리해 독특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지장전, 대웅전, 극락전, 산신각 등 사찰의 주요 건물들과 함께 계곡과 돌다리는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포토존입니다. 이곳은 월류봉 둘레길의 시작과 종점이기도 하며, 둘레길 총 길이는 편도 8.4킬로미터에 이릅니다.
혹서기에도 변함없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와 함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충북 영동의 세천재와 반야사는 여름철 산책과 문화 탐방에 최적의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